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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형주
‘사랑과 우정의 상징, 양파로 만든 양파링’ 은 또 어떻고요? 입에 착 감기는 노랫말과 스낵을 즐길 때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 CM송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45년 여간 CM송 1400곡을 만든 제작자, 통기타 문화의 선도자, 쎄시봉의 주역, ‘웨딩케이크’∙’조개껍질 묶어’ 등
130 히트곡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바로 가수 윤형주 씨입니다.
농심의 많은 제품 광고 음악들이 그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곡을 쓸 수 있는 영감이 “사랑”에서 나온다고 하는데요.
노래도 사랑에서, 광고 음악도 제품에 대한 사랑과 신뢰에서 나온다는 그는
“음악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빼면 무엇이 존재하겠느냐”고 되묻습니다.
광고음악으로 시작된 농심과 윤형주 씨의 특별한 인연, N터뷰에서 함께 하세요.
매회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 만든 CM송이 1400여 곡에 이릅니다.
어떻게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
A. 그 사연은 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요. 학업을 하면서 은퇴 공연을 2번이나 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의사가 돼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환자를 보는 삶은 저에게 맞지 않을 것 같았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광고 음악 일을 하시던 이백천 선생과 가수이자 고등학교 선배인 김도향 씨가 ‘광고 음악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45년 가량 됐죠.
초반 작업으로 잘 알려진 것이 인디안밥이었어요. 그때 인디안밥 인기가 대단했어요. 인디안밥을 가져가려는 총판업자들에게 라면을 끼워 팔았더니 금새 동이 났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어요.
- 그렇게 농심과의 인연이 시작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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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때는 CM송에 따라 광고 콘셉트를 결정하던 시절이었어요. 초반에 히트하자 CM송 제작 요청이 줄 지어 들어왔죠. 특히 농심과의 인연이 두터워졌고 농심 제품의 CM송 중 95%는 제가 만들었을 겁니다.
제품이 식품이다보니 ‘내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지’가 주 관심사인 주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중요했어요. 모든 가사는 제가 다 쓰는데 그 때 저도 한참 아이를 키우던 때였으니 그 감성을 공략하기 쉬웠죠.
- 선생님이 만드신 농심의 제품의 CM송, 신춘호 회장님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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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양파링부터 시작해볼까요. 양파로 스낵을 만든 것 자체가 전략적이고 인상적인 제품이었어요. 양파링을 나눠 먹는 사람들의 우정이나 애정을 가사에 담았어요. 노래 중 ‘벗겨도 벗겨도 깊은 그 맛~’ 이 부분이 제 목소리인데 신 회장님이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농심 양파링~’ 이렇게 끝나는 이 광고 음악이 크게 히트했었죠.
너구리의 ‘쫄깃쫄깃 오동통통 농심 너구리,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는 가수 정수라가 녹음했어요. 라면 이름이 ‘너구리’라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다 신춘호 회장님의 독특한 발상과 확고한 광고 철학 때문이예요.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제품명보다 직설적이고 명확한 이름,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아이디어를 선호하셨어요. 안성탕면도 그렇고, 제주 삼다수가 처음 탄생했을 때도 그랬죠.
신 회장님의 광고 철학이 잘 드러난 광고 제품이 ‘농심라면’이었어요. 타 사의 라면과 경쟁이 치열할 때였죠. ‘코미디언 구봉서 씨와 곽규석 씨를 모델로 섭외했으니 CM송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두 사람을 어떤 관계로 설정할지 고민을 시작해서 자그마치 52곡을 제안했는데 다 반려 당했어요. 내가 농심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계속 ‘이건 아니’라고 하니까 어느 날은 화가 나서 뭐가 문제냐고 물으니 회장님이 ‘철학이 없다’고 하셨대요.
최종 광고는 두 주인공이 형제로 나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고 단번에 대박이 났죠.
첫 광고가 성공하고 나서 회장님이 부르셔서 처음 뵙게 됐죠. 아무리 인기가 있다한들 CM송 제작자가 회장님을 만나 담소 나누는 일은 잘 없었어요. 제가 만난 신 회장님은 소탈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분이었고 대화가 잘 통했죠. 회장님은 “내가 원하는 걸 윤 선생이 잘 표현해줬다”고 말씀하셨어요. 클라이언트와 제작자가 성공적으로 교감한 거죠. 회장님이 대중의 성향을 잘 파악한 전문가이기도 했고요.
- 몇십 년간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광고음악 중 ‘새우깡’만 한 것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이것도 선생님 작품이죠? -
A. 새우깡은 이미 시장에서 잘 나갈 때 스낵의 선두 제품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CM송을 만들게 됐어요. 새우깡의 속성부터 되짚어가며 콘셉트를 구상했죠. 새우깡은 아이도, 어른도 좋아하고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손이 간다는 걸 가사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다른 걸 더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후에 듣기로 새우깡 매출이 500억 원에서 850억 원으로 뛰었다고 하더라고요. 소비자에게 오래 기억되고 제품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데 대표적인 게 농심라면과 새우깡입니다.
제 개인 공연을 하면 CM송 메들리를 들려드리는데요. 새우깡을 포함해 여러 곡을 부르며 관객들을 살펴보면 ‘내 노래가 국민들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내렸구나’ 하고 느끼게 돼요.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도 그 시절의 추억을 다들 간직하고 있는 거죠.
- 좋은 CM송을 만들기 위한 선생님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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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해당 제품을 사랑하기까지 기다려야 해요. 계속 바라보고 생각하며 스스로 질문해요. ‘내 자식에게 먹일 수 있는 식품인가?’
먹일 수 없으면 이 일을 맡을 수 없어요. 이 제품에 신뢰가 없는데 생업이라는 이유로 맡아서는 안 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제품에 대한 내 신뢰와 애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사랑 노래가 그렇듯, 사랑하면 가사가 나와요.
CM송은 주로 20초 분량으로 작업 했는데 직원들에게 늘 ‘우리는 20초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매 초에 기업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강조해요. 그 기업의 재산이니 함부로 써서는 안 되고 20초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야 해요. 모든 가사는 제가 직접 쓰는데, 단어의 바다에서 그 제품에 필요한 단어를 낚아야 해요. 가사가 제품의 속성을 결정하고 듣는 사람이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야 하니까요.
- 끝으로 농심인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A. 농심과 관계를 갖게 된 게 벌써 45년이 되었네요. 저의 젊은 날부터 농심의 광고 역사에 제가 함께 한 것이 감사하고, 아주 귀한 기간이었습니다. 저를 믿어 주셨던, 돌아가신 신춘호 회장님과 교감할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하고 계신 것도 축복입니다. 농심의 미래를 만들어 갈 분들이죠. 농심이 더욱 더 세계로 뻗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