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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1등이 아니야, 나도 울리는 신라면
저자 윤이나 작가*는 이 책에서 더할 나위 없이 진심인 라면에 대한 애정을 가득 풀어냈는데요.
그런 그가 N:zin에서 괜히 라면의, 라면에 의한, 라면을 위한 에세이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언제나 한결 같이 ‘너무나 1등’이었던 신라면에 달걀이 잠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기대하며 읽어주세요!
한국인의 매운 맛 기준 "신라면보다 매움"
나는 최소 5~10종의 라면을 구비해 놓고 처해있는 상황과 그날의 기분, 당일의 온도에 따라서 각기 다른 라면을 택하곤 한다.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제대로 끓이기만 한다면 맛이 없기 어려운 게 라면이라는 음식이고, 모든 라면은 각각의 장점이 있다고 믿는 나이기에 단 ‘하나’를 꼽아보라는 질문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보통은 좋아하는 라면 몇 개를 돌려가면서 대답한다.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을 위해서 농심 너구리 매운맛을 꼭 준비해둡니다”라든가 “라면땅이라면 역시 안성탕면이죠”하는 식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신라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신라면 파가 아니었다. 여기서 ‘파’라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을 비교하게 될 때 언제나 딸려오는 편가르기다. 세상에는 ‘라면은 역시’ 신라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신라면’이라는 말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명백한 후자로 살아왔다. 굳이 말하면 반신라면 파 쯤 되겠지만,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세상에는 많은 라면이 있는데 왜 신라면을 그렇게까지 고집하는지, 왜 그 정도까지 압도적으로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을 뿐이다. 대학 때 MT를 갈 때면 무조건 신라면을 사가던 선배들에게 ‘또 신라면이에요?’라고 묻는 쪽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질 정도다.
딱 보면 알지, 신라면 느낌 아니까
자초지종은 이렇다. 책에 관해 한 시간 동안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출판사의 마케팅팀이 라면의 블라인드 맛 테스트를 기획했다. 나는 라면을 끓이기도 전부터, 지퍼백 속에 있는 라면의 모양, 면의 굵기, 수프의 색과 건더기의 종류까지 분석하며 라면 맞히기에 골몰했다. 책에도 썼지만 사실 나는 맛을 보고 제품명을 알아맞히는 것으로 좋아하는 마음의 척도를 재려는 시도를 의심하는 편이다. 맛을 아는 것과 음미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맛을 외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심이 자극될 때는 좀 다른 문제다. 나는 첫 번째 문제에서 오락가락하며 상처 난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두 번째 문제에 사활을 걸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라면이 등장했다. 끓이기도 전부터 알 수 있었다. 면이 뭉쳐진 모양이 원형이고, 수프의 색이 탁하지 않은 선명한 빨강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바로 그 건버섯이 있다. 라면을 끓여 맛보기도 전, 그러니까 문제를 맞히기도 전에 내가 감탄한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농심의 라면에는 시그니처가 있는 것이다. 신라면의 건버섯, 너구리의 다시마, 안성탕면의 된장 색 수프 같은 것. 테스트를 위해 포장지 대신 투명 지퍼백에 들어 있었지만, 내 눈에는 신라면의 빨간 포장지와 붓글씨로 쓴 ‘매울 신辛’자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내 책 속 한 챕터의 제목은 ‘달걀은 잠영처럼’이다. 라면에 달걀을 넣고 싶다면 국물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부드럽게 넣은 뒤 절대로 휘젓지 말아야 한다는 팁이 담겨있다. 그 방식을 재연하기를 원했던 출판사에서 달걀을 준비해두었는데 신라면을 끓일 때 넣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주었다. 달걀을 넣은 라면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약간 심드렁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신라면에 넣는 것이 좋겠네요. 매운 라면이니까 달걀이 들어가면 맛이 좀 더 부드러워지기도 할테고.”
영혼이 감탄한 맛, 한국인의 매운 맛
그날, 달걀이 잠영했던 신라면은 내가 최근 몇 년 간 먹었던 라면 중에 가장 맛있었다. 심지어 증인까지 있었다. 진행을 맡은 나의 친구이자 동료 역시 그렇게 말했다. 진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였다고 했다. 댓글도 보지 않고 라면을 먹던 나는, 친구에게 달걀을 양보했다. 국자로 뜨면 약간 덜 익은 노른자를 잘 익은 흰자가 감싼 채 고스란히 떠지는, 최고의 라면 달걀이었다. 아마도 그 순간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나 ‘1인분의 라면 1인분의 삶’을 주장하는 나지만 살다 보면 같이 먹는 라면이 최고인 순간도 있는 것이다.
농심인의 질문을 모아 모아 윤이나 작가가 직접 답해드립니다.
에세이에 대한 뜨거운 반응도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