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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빈곤의 상징이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라면이 사치스러운 음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취급되는 것은 라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요. ‘라면=보장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윤이나 작가는 말합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줄이고자 한 것은 식비가 아닌 수고”였다고.
라면 에세이 2편에서는 라면을 빈곤과 연결 짓는 시선에서 대해 이야기합니다.
라면에게 삶의 일부를 준 시절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라면에게 삶의 일부를 외주 주는 시절을 겪는다.”
이 문장은 내 안에 오래 남아서, 나에게 이런 시절이 언제였는지를 여러 번 곱씹게 만들었다.
한 시절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짧은, 한 시기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독립을 해서 홀로 옥탑방에 살았던 때의 일이다. 그 옥탑방은 월세가 5만원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도 서울 안에 5만원짜리 월세방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터라 월세를 들으면 사람들은 늘 “50만원?”이라고 다시 묻곤 했다. 나는 그 옥탑방에 살면서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첫 급여와 원고료를 받았고, 글을 쓰는 것으로는 생활비를 댈 수 없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 한 칸과 분리된 주방, 그리고 화장실까지 세 칸으로 분리된 공간에 3년 정도를 살았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옥상이 있었다. 옥탑방의 유일한 자유이자 낭만, 옥상.
그 옥상에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던 이모부가 직접 만들어 주신 평상을 놓자, 내 자그마한 옥탑방은 야외와 연결되어 확장됐다. 이벤트와 기념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 평상에서 먹는 첫 식사를 어떤 음식으로 할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평상이라면 무조건 삼겹살 아니야?” 하지만 나에게 ‘무조건’이 붙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밖에 없다. “무조건 라면이지.” 내가 처음으로 독립한 공간에서 처음 먹는 음식이라면 무조건 라면이어야 했다. 게다가 야외에서 가스 버너에 끓인 라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가 있지 않은가. 동네의 잡화점에서 양은냄비를 사온 나는 봉지 라면을 하나 사서 끓여 먹었고, 그 양은 냄비는 자취 생활 내내 요긴하게 쓰였다. 물론 가장 많이 쓰인 것은 라면의 물을 올리는 용도였고 말이다.
육개장보다 김치 사발면이 좋은 이유
그때 가장 많이 먹었던 라면이 바로 농심의 김치 사발면이다. 김치 사발면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라면 책을 낸 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애 라면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주었다. 봉지 라면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컵라면은 한 라면의 지분이 상당하다. 그 라면의 이름은 바로 농심 육개장 사발면이다. 육개장 사발면이 어떤 라면인가. 육개장 컵라면이라고 불러도, 사발면이라고 해도 모두 단박에 알아듣는 컵라면 계의 클래식이다. 물론 나도 좋아한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야외 수영장에 갔을 때도 육개장 컵라면을 선택했고,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게 먹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김치 사발면을 더 좋아한다. 이 말을 하는 데는 의외로 용기가 필요한데, 육개장 사발면의 인기가 워낙 대단하고 좋아하는 분들이 왜인지 강경하게 최고의 컵라면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김치…’ 하고 운을 떼면, 라면의 맛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김치 사발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김치가 스쳐간 국물 맛을 포기할 수 없다.
옥탑방에 사는 동안 나는 요리 실력을 늘리지 못했고 김치를 온갖 방식으로 활용하는 법만 터득해 김치볶음밥, 김치죽, 김치찌개 등 여러 버전으로 먹었는데, 김치 사발면을 먹으면 언제나 그때 생각이 난다. 김치 사발면을 먹으며 여러 기억이 남겨진 공간과 이별하던 그 며칠이 말이다.
최소한의 수고로 얻는 최대한의 맛
그래서 최소한의 수고로 최대한의 맛을 얻어낼 수 있는 라면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줄이고자 한 것은 식비보다는 수고가 아니었나 한다. 라면은 그때의 나를 먹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라면에게 삶의 일부를 외주 주는 시절”을 나는 옥탑방에서 살았던 것이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산재로 사망한 인물의 유품을 정리하는 장면을 보았다. 고인의 가방을 정리하던 주인공은 작은 컵의 컵라면과, 젓가락을 발견한다. 아직 1차원적인 의미 너머를 발견하지 못하는 스무 살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고인은 컵라면을 좋아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런 대답을 한다. “고인은 컵라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하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가지고 다닌 게 아닐까.”
하지만 이 드라마가 참고했을 실제의 사연처럼, 누군가는 시간이 없어서, 삶의 여유가 주어지지 않아 라면을 먹는다. 수고로운 일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라면을 선택하기도 했던 내가 그랬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할 때 컵라면을 집어든다. 라면은 그런 순간 꼭 필요하고, 때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는 라면이 가진 그 두 가지 특징을 같이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바라기는, 결국에는 모두 라면이 맛있어서 먹는 음식이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일하는 사람도 컵라면을 제외한 선택지가 없을 만큼 시간에 쫓기지 않았으면 한다. 라면이 그저 간편하고 맛있는 한 끼로서의 역할만 하게 된다면, 라면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아주 기쁠 것 같다. 그럼에도 일상이 버겁고, 몸과 마음이 많이 바쁘고, 손가락도 까딱하기 힘든 순간은 찾아올 수 있으니까 비상용으로 컵라면을 준비해두는 것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내일은 오랜만에 김치 사발면을 먹어야겠다.
농심인의 질문을 모아 모아 윤이나 작가가 직접 답해드립니다.
에세이에 대한 뜨거운 반응도 언제나 환영!